
방탄의, 방탄에 의한, 방탄을 위한 빅히트
0. Intro
세계적인 K-Pop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을 만들어낸 방시혁 대표의 기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상장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HYBE'(이하 '하이브') 라는 이름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미국의 유명 엔터테인먼트 매니저인 Scooter Braun 이 이끄는 Ithaca Holdings 를 1조원에 인수하기로 한다. Ithaca Holdings 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아티스트의 발굴부터 마케팅, 수익화 전반을 수행한다. Ithaca Holdings 의 자회사 SB Projects 는 아티스트들을 위한 매니지먼트 회사로 유명 "고객"으로는 Ariana Grande, Justin Bieber, 그리고 Quavo 등이 있다.
회사는 새로운 사명의 이름은 "연결과 확장, 관계"를 의미 한다며 사업의 본질은 음악에 머물겠지만,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경계를 확장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실제로 자회사 '위버스'(Weverse, 웹사이트와 iOS 및 Android 앱으로 제공) 를 통해 아티스트와 팬들을 위한 커뮤니티, 유•무료 컨텐츠 판매, 그리고 'Weverse Shop' 이라는 쇼핑몰을 통해 아티스트 관련 굿즈를 판매하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자료: Weverse
1. 해외 'Record Label' 과 한국 '연예기획사'의 차이점
언론에서 한국의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을 지칭할 때는 보통 그들의 '소속사' 또한 같이 언급한다. 소녀시대에는 항상 SM 엔터테인먼트가 따라붙고, 방탄소년단에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이제는 하이브) 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한국의 연예기획사는 보통 중학생때 "연습생"들을 모집하여 그들이 상업적으로 경쟁력있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게 보컬/작곡/안무 등 수년에 걸쳐 회사의 비용으로 훈련을 시키고 데뷔해서 상업적 성공을 거둘 경우 수익을 나누는 계약을 맺는다. 투자대상을 발굴해서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예술계의 사모펀드로 볼 수 있다.
해외에는 그러한 개념이 없다. 아예 없진 않지만 한국의 기획사처럼 아티스트가 정해진 숙소에서 생활하며 소속된 회사에서 훈련을 받으며 연습을 하러 나가진 않는다. 따라서 아티스트가 연예기획사에 "소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는것이 맞다. 따라서 Ithaca Holdings 인수를 다루는 기사에서 해당 회사에 Justin Bieber, Ariana Grande 등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예인들이 "소속되어 있다"고 적어 놓았다면 잘못된 표현이다.
그렇다면 해외 Record Label 들은 주로 아티스트와 어떤 계약을 할까?
1. 360 Deal
2000년대 초중반 인터넷의 급부상과 함께 시작된 불법 음악 다운로드는 CD 혹은 테이프로 창출되는 음원수익을 파괴했고 주요 레이블들의 매출 또한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감소를 이어나갔다. 따라서 아티스트의 음악에 대한 저작권을 소유함으로써 수익을 내었던 레이블들은 기존의 계약 방식대신 '360 계약'을 도입한다. 아티스트가 음원제작, 마케팅, 공연 하는데 드는 비용을 선수금으로 지급하는 대신 음원판매, 공연수입, 굿즈 판매에서 나오는 향후 수익의 10~30% 를 나눠갖는 방식이다 (물론 레이블이 초기 투자금을 모두 회수할 때 까지 해당 아티스트는 한 푼도 못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2015년 부터 Spotify 로 대표되는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인기를 얻으면서 이러한 계약방식은 점점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2. 50/50 Deal
중소규모 레이블들은 음원에서 발생하는 총수익의 50%를 아티스트와 같이 나눠갖는 50/50 계약방식을 선호한다. 이들은 대규모 레이블과는 다르게 초기 투자금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향후 기대수익을 일부 포기하는것이다. 대규모 레이블들은 초기 투자금을(상대적으로) 넉넉하게 주고 지원 가능한 자원이 많은대신 아티스트에게 음원수익의 12~18% 정도에 해당하는 로열티를 지급한다고 한다.
대부분 레이블의 경우 아티스트와 계약을 할 때 저작권을 가져간다. 최근에는 xx년 후 해당 아티스트에게 다시 저작권이 돌아가는 계약도 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아티스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다.
2. Ithaca Holdings: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회사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예술사업을 도와줄 매니저들을 구한다. 전문성 있는 매니저들은 아티스트를 대신해서 Record Label 과의 계약, 공연계약, 광고계약, 스케쥴 관리, 언론 관리등을 대행하는 대신 해당 아티스트나 그룹의 활동에서 발생하는 '총 수익'에서 10~25% 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이미 인지도 있는 아티스트 일수록 가져올 수 있는 매출이 크기 때문에 수수료율은 낮아진다.
이러한 대행사들을 해외에서는 'Artist Management Company' 혹은 'Talent Management Company' 라고 부르며 아티스트의 최초 발굴부터 향후 모든 활동에 관여하는 한국의 연예기획사 시스템과는 다소 다른 체계이다.
자료: 하이브 | DART 전자공시
하이브가 입수합병한 Ithaca Holdings LLC 는 매니지먼트, 레이블 사업 모두 진행중이라고 적혀있지만 (비상장 기업이고 미국은 비상장기업에 대한 회계자료는 공개가 되지 않는게 통상적이라 추측할 수 밖에 없다.) 매니지먼트 사업의 비중이 더 높을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SB Projects 에서 매니지하고 있는 유명 아티스트들인 Ariana Grande 의 현재 레이블이 Republic Records(파트너 사) 로 표기되어 있고 Justin Bieber 의 경우 Def Jam Records 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두 가수 모두 Ithaca Holdings LLC 의 자회사인 Schoolboy Records 와 음반을 냈었지만, 최근의 앨범들은 다른 회사들과 내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베일에 쌓여있던 Ithaca Holdings 의 최근 사업연도(2020년) 재무제표가 인수합병이 확정 되면서 일부나마 공개 되었는데, 매출액은 1554억원이고 당기순이익은 2045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은 공개 되지 않았는데 일부러 공개하지 않은것으로 추측한다.
https://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54969396
Ithaca Holdings 는 2019년에 미국의 레이블인 Big Machine 을 300억 달러 (약 3300억원) 인수했는데, Big Machine 은 미국의 유명 싱어송라이터인 Taylor Swift 와의 음반계약으로 그녀의 첫 6개 앨범에 대한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위 기사는 2020년 11월에 공개된것으로 Ithaca Holdings 가 해당 6개 앨범에 대한 저작권을 300억 달러 (약 3300억원) 에 매각 했다는 내용이다.
자산 매각으로 인한 수익은 회계상 영업외수익으로 분류 되므로, 3300억원에 2020년 순이익 2045억원을 차감하면 2020년 Ithaca Holdings 의 영업손실은 1250억원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한다.
3. Weverse 플랫폼을 위한 빅픽처?
하이브에 대해 가장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하나금융투자 이기훈 애널리스트는 (Buy | 360,000원) Ithaca Holdings 의 합병을 두고 "하이브의 핵심인 Weverse 플랫폼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목표주가를 이전보다 무려 48%나 높게 잡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행보들이 Weverse 의 세계화를 가져올것으로 생각한다:
1) Justin Bieber, Ariana Grande 등의 팔로워가 많은 세계적 아티스들의 입점으로 인한 외연확장
2) 온라인 공연 플랫폼인 VenewLive 와의 JV (합작회사) 설립
3) 네이버 V Live 플랫폼 인수 (월간 사용자수 5100만명)
하이브는 또 세계 최대 레이블인 Universal Music Group (이하 "UMG") 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하며 UMG 아티스트가 하이브의 Weverse 플랫폼에서 "팬들과 함께 소통하며 모험할 것" 이라며 기대감을 끌어올린바 있다.
해당 애널리스트는 2022년까지 하이브의 매출액은 2.3배, 영업이익은 2.5배 가량 증가할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향후 이익성장의 대부분을 COVID-19 로 인한 이동제한 조치등이 완화되며 반사이익으로 증가할 콘서트 매출, 또 그에 연동되는 MD 매출이 책임질것으로 예상하는듯 하다. 그러나 따로 온라인 매출액 예상치를 내놓지는 않았다.
2020년 하이브의 사업보고서에 의하면 온라인 매출 비중은 30.4% 로, 전년의 12.2% 대비 대폭 증가했고 소속 아티스트의 컨텐츠와 관련 상품 매출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많이 이동한것으로 보인다. 또 소속 아티스트 방탄소년단의 "전세계적" 인기가 2019년 대비 많이 오른것이 반영된것으로 보인다.
4. 위험요인: 매출 87.7% 가 '방탄소년단'
하이브가 2020년 9월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이름으로 상장할 당시 제출한 증권보고서에 의하면 방탄소년단의 2020년 상반기 매출 비중은 87.7% 로 매출액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캐시카우였다. 국내 연예기획사들은 그동안 특정 아티스트의 인지도, 활동유무에 따라 실적이 좌지우지 되는 모습을 보였으니 방탄소년단에 치중된 매출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방탄소년단 전원이 입영대상이라는점은 그룹의 장기적 수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Ithaca Holdings 를 인수, 국내 타 연예기획사 인수, UMG 와 합작한 레이블 설립, Weverse 등 플랫폼 비즈니스 확대등 미래를 착실히 준비하는 모습이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하이브의 미래 성공을 담보할 수는 없다.
다음은 필자가 생각하는 향후 위험요인이다:
1) 방탄소년단의 높은 매출비중
방탄소년단의 매출비중은 향후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 인데, 하이브가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다른 아티스트를 확보하며 포트폴리오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대등의 문제로 방탄소년단의 활동에 제한이 생길경우 타 아티스트 매출성장률이 방탄소년단의 매출 감소를 완화하지 못할 수 있다. 87.7% 에 해당하는 높은 매출 기여비중 때문이다.
또 Weverse 의 높은 온라인 매출 성장률 또한 플랫폼 자체의 경쟁력이라기 보다는 방탄소년단의 컨텐츠와 MD 상품등이 독점적으로 제공되는것이 이유일수도 있다. 다른 아티스트들의 경우 Weverse 플랫폼을 독점적 사용하도록 강제하기 힘들거나 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다.
2) 유명 아티스트 = 낮은 협상 레버리지
Ariana Grande, Justin Bieber 등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를 확보한것은 좋으나, 이들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이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이익률 관점에서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 특히 두 아티스트의 경우 각각 112억원 규모의 하이브 주식을 당근으로 제시해서 한동안 하이브와 Weverse 플랫폼에 종속되어 있을수는 있겠지만, Ariana Grande 의 작년 한해 매출이 700억원대, Justin Bieber 가 800억원대로 추정되는것을 감안하면 이들에게 하이브의 장기적인 성장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5. 결론: 꿈과 계획은 있지만 확실한 건 없다.
하이브는 기존의 유명 연예기획사인 SM 엔터테인먼트, JYP, YG 등에 비교해서 확실히 한차원 높은 경영전략과 수행능력을 갖추고 있고, 그로인한 프리미엄은 당연히 인정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방탄소년단에 집중된 매출 구성은 향후 매출 및 이익 안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회사 안팎에서는 '플랫폼 기업'이라 칭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방탄소년단을 위한 플랫폼인지 모든 아티스트을 위한 플랫폼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현재 시가총액 8조 8700억원을 보면 향후 미래가 기대되는 기업다운 밸류에이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하이브와 투자자들이 꿈꾸는 미래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고 보기에는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