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석유 공급 국가들이 있음에도 기름값이 오르는 이유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길, 외근을 하다 지나치는 길, 주말이 되어 세차도 하고 주유도 하는 길,
주유소를 지나칠 때마다 항상 보이는 전광판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제가 한 번 맞춰 보겠습니다.
"왜 이렇게 비싸?"
국내 휘발유 가격 추이, 대한석유협회
분명 작년 이맘때 쯤, 리터 당 1,550원에서 1,580원 언저리였던 것 같은데요,
지금은 얼마죠?
opinet의 주간 국내 유가 동향에 따르면, 6월 2주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은 전주 대비 22.4원 오른
2,030.8원/L 입니다.
휘발유의 리터 당 판매가는
- - 2016년 평균 1,402.52원
- - 2017년 평균 1,491.47원
- - 2018년 평균 1,581.40원
- - 2019년 평균 1,471.89원
- - 2020년 평균 1,381.57원
- - 2021년 평균 1,543.34원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상승폭이 가장 큰 연도가 162원이었는데,
현재의 상승폭은 작년 대비 3배 더 높은 487원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먼저 그 전에, 다들 아실만한 원유 등급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원유는 걸쭉한 정도와 유황 함량에 따라 등급이 매겨집니다.
그 중 찐득하지도 않고 목넘김이 좋은 경질유가 으뜸이고, 우리의 자동차는 입맛이 고급이라 경질유만 먹습니다.
앞으로 언급할 Brent와 WTI는, 이 경질유에 대한 벤치마크 지수입니다.
WTI, TradingView
WTI의 가격 추이는 2011년 4월과 동일한 수준이며,
2008년 최고점과 비교하면 -18.20%에 위치한 수준입니다.
2008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금융위기가 있었다는 것은 저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2011년은 익숙하지 않은데요,
2011년 4월엔 무슨 일이?
2011년에는 튀니지 혁명(재스민 혁명)이 있었습니다.
2010년 12월 17일, 경찰의 노점상 단속으로 생존권을 위협 받은 튀니지의 26세 청년이 분신 자살을 하게 됩니다.
이를 시작으로 민중은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시위를 벌이게 되었고, 군대조차 중립을 선언,
벤 알리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가게 되면서 정권은 붕괴하게 됩니다.
이 영향과 실업률, 식량 인플레이션, 그리고 빈부격차가 맞물려 이집트, 예멘 등의 다른 국가에도 시위가 번졌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알제리, 리비아 등의 국가에서도 시위가 보고되었었습니다.
위 국가들의 당시 세계 원유 공급 비중은
- - 이집트: 0.8%
- - 예멘: 0.3%
- - 사우디아라비아: 11.6%
- - 알제리: 2.5%
- - 리비아: 2.1%
불안한 국제 정세와 산유국들의 구조적인 붕괴 우려 속, 원유는 급등하게 됩니다.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서, 무슨 일이?
Russia-Ukraine crisis: How likely is it to escalate into broader war? - BBC News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진행 중입니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의사로 위협을 느낀 러시아가 시작한 침공은, 세계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도 3월 8일, 러시아로부터의 석유, 천연가스, 석탄의 수입을 금지하는 결정을 하였는데요,
우리는
"석유 하면 어디가 가장 먼저 떠오르냐"
라는 질문을 받으면 주저 없이 사우디아라비아가 먼저 떠오릅니다.
흰 터번에 고급 선글라스 쓰고, 구찌 매장을 들어가는 그 모습을요.
AJ Labs
그런데 실상은 살짝 다릅니다.
세계 석유 공급에 기여하는 정도를 찾아보면, 미국이 20%로 1위, 사우디아라비아가 그다음,
그리고 3위가 러시아로, 세계 석유 공급의 11%를 차지합니다.
이라크, 이란 같은 국가들은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하는, 넓은 땅 덩어리의 메리트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석유 공급량 3위 국가의 석유 수입을 불매 선언한 것입니다.
러시아를 압박하고 싶은 마음도 알겠지만, 미국이 그것 만으로 세계 석유의 11%를 공급하는 국가의 석유를 받지 않겠다 선언할까요?
무슨 배짱으로요?
U.S. Imports of Crude Oil in 2021, CNN
AFPM(American Fuel and Petrochemical Manufacturers trade Association)에 따르면,
미국은 2021년에 러시아에서 평균 209,000bpd의 원유와 500,000bpd의 기타 석유 제품을 수입하였다고 집계되어 있습니다.
이는 미국 원유 수입의 3%, 그리고 미국 정유소에서 처리하는 총 원유의 1%에 해당합니다.
버틸만하다는 것이죠.
그건 니네 사정이고, 우리는 달라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벨라루스, 쿠바, 퀴라소, 카자흐스탄, 라트비아는 총 수요의 99% 이상의 원유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요,
EU 중 독일, 폴란드, 슬로바키아, 핀란드, 리투아니아가 러시아에 크게 의존합니다.
그렇기에 EU는 수입량을 2/3으로 줄이겠다 하였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은 모습을 보입니다.
whitehouse.gov
미국도 러시아 석유에 대해 불매 운동을 선언하면서도, 동맹국들이 우리와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고 명시하였습니다.
그럼 러시아가 이유가 아닌 것인가?
아닙니다.
다시 한번 석유 공급 순위를 떠올려보자면,
1위가 미국, 2위가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3위가 러시아
이 세 국가의 공급량이 전세계 공급의 40%에 육박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 상황에서 러시아 석유를 수입하고자 하는 국가가 있을까요? 러시아의 석유를 사주면, 러시아는 그 돈으로 무기를 뚝딱 만들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사살할 수 있습니다.
즉, 석유를 수입하려면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그럼 눈치를 살펴야 하니까 3위인 러시아를 제외하면,
남은 것은 사우디, 미국 정도 입니다.
먼저 사우디는 재고가 여유로움(2.0 ~ 2.5m bpd)에도 불구, 가격 유지와 혹시 모를 리스크 관리를 위해 생산을 추가적으로 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여담으로 생각해보면 다이아몬드도 이런 식으로 가격 관리를 했다죠?
이제 남은 것은 미국입니다.
U.S. Crude Oil Stocks, EIA Report
그러나 미국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미국의 원유 재고량은 보시는 바와 같이 5년 평균치를 훨씬 밑도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누구에게 더 나눠 줄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죠.
IEA Report에 따르면, (위 EIA Report랑 다른 것입니다) 2022년 세계 석유 수요는 하루에 320만 배럴 씩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물 컵 기준으로 하루에 25억 컵 씩 증가한다는 것인데요,
Bloomberg에서도 시장이 현재의 위축 된 상태를 유지한다면, WTI는 $150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와 같은 - 수요의 증가에 비해 공급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따라주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원유의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것이며, 러우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쟁이 어서 끝나기를 기도하며,
끝나기 전까지만 대중교통을 사용하거나 걸어 다니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나쁜 선택이 아니겠습니다.